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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제 3 호 미국의 낙태죄 판결 뒤집기, 우리나라의 방향은?

  • 작성일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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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6616
주유라

미국의 낙태죄 판결 뒤집기, 우리나라의 방향은?


202010321@sangmyung.kr 편집장 주유라


당신에게는 자유롭게 피임할 권리가 있다. 신체의 주인은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권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은 벌을 받을 일인가? 그렇지 않다. 쾌락에 따른 형벌, 즉 섹스에 따른 책임을 묻는 논리는 신체의 주인이 지닌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논리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는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다. 여성은 인간이고,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2년 6월 24, 미국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410 U.S. 113 (1973)) 판결이 뒤집혔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란 1973년 미국 전역의 임신 중단을 허용하도록 한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이다. 그러나 미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해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하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낙태를 제한하면 여성과 소녀들을 위험하게 몰아가 여러 합병증,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것이라며 이러한 판결을 퇴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미국 대법원의 판결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낙태죄 입법 논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의 판결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19년 4월 11,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헌재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에서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고 판결했다. 이전까지 한국의 낙태죄는 66년간 존속되어왔다. 낙태죄로 불렸던 형법의 조항은 다음과 같다.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명시하였다. 270조 제1항 중 낙태 시술 의사에 관한 부분에 따르면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조항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담긴 낙태죄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2021년의 시작과 함께 효력을 잃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던 판결문인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은 낙태죄 조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하고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의 유지ㆍ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한다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임신ㆍ출산ㆍ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ㆍ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ㆍ심리적ㆍ사회적ㆍ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결정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2019년부터 2021년의 시작까지 낙태죄가 유효하였던 이유는 2년간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기 전까지 정부의 개입과 입법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이루어진 시점으로부터 약 3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낙태죄에 대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아도 임신중절에 대한 공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고, 사람들이 임신중절을 위한 약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한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태가 3년째 지속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낙태와 관련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모자보건법이다. 모자보건법은 임신 중지 수술의 허용 범위를 제시한 법안이며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형법에서 낙태죄는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았지만, 모자보건법 상에서는 임신 중지 수술의 허용 범위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따르면 임신 중지 수술을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허용한다. 본인·배우자가 유전학적 장애가 있는 경우 본인·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본인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이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의 허용 범위를 충족하지 않은 그 밖의 임신중절을 한 경우에도 낙태에 대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자보건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고 남아 낙태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회는 형법 조항 수정을 위해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년째 낙태와 관련한 추가 입법은 없다. 형법과 모자보건법에 관한 개정안 6건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대략 1만 997건이다. 입법 공백 상태가 길어진다는 것은 임신중절과 의료 현장 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음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의 판결은 트럼프가 집권하던 시기에 새롭게 미 대법원에 재판관이 자리를 잡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 이 판결은 트럼프 보수정권에 의해 나타난 것이지, 미국 전체의 의견 또는 세계 흐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죄는 사회의 지배계층 또는 집권당의 이념, 사회적 상황, 종교 등과 면밀히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일례로 루마니아는 인구 증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이 피임과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출산 강요 정책을 펼쳤다. 1967년 이전에는 자유롭게 낙태가 이루어졌던 루마니아이지만, 차우셰스쿠의 정책인 포고령 770에 의해 임신한 여성은 모두 출산할 때까지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


검은 시위로 잘 알려진 폴란드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후 나라가 파괴되어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여성이 필요했다. 나라의 존속을 위해 여성 인구가 필요했지만, 폴란드에서는 불법 낙태로 인해 1년에 6만 명의 여성이 사망하고 있었다. 여성이 합법적으로 낙태를 하여 죽지 않고 당장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폴란드에서 낙태는 1956년에 즉시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1993년부터 폴란드는 낙태가 다시 불법이 된다. 1993년까지 합법이던 낙태가 또다시 불법이 된 까닭은 공산 정권이 몰락하고 가톨릭 이념이 정치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에는 피임죄가 있었다. 가톨릭과 가부장제의 강한 압력에 의해 피임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현재 15~18세 여성에게 무료로 피임약을 지급하고, 임신중절 수술이 12주까지 합법이며 무료로 이루어지는 프랑스의 모습을 볼 때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이다. 피임과 낙태는 국가의 입맛에 따라 금기과 허용을 오고 간다. 국가가 재생산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강력한 정치적 도구와 정치적 힘을 쥐게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낙태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은 낙태가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일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임기 여성 중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 사람은 대략 5명 중 1명꼴이다. 2022년 6월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만 1549세 임신을 경험한 여성 3519명 중 17.2%인 606명이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하였다. 만 1544세 응답자 가운데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2362)의 15.5%가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은 어떡하나요?’, ‘태아는 생명인가요, 아닌가요?’ 이러한 논의의 이면에는 쾌락적 성관계에 대한 징벌의 심리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0세기, 섹스를 통한 쾌락에 대해 죄를 매겨야 한다는 가톨릭 관념이 만들어낸 끔찍한 시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용소이다. 이 시설에는 약 3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으며 몸을 버린 여자들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이곳에서 더럽혀진 몸의 죄를 씻어낸다는 명목으로 고된 노동을 하며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여성들은 섹스를 해서, 강간을 당해서, 아기를 낳아서, 너무 예뻐서 등의 이유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한다. ‘막달레나 수용소는 여성의 쾌락에 대한 징벌의 심리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놀랍게도 이 시설은 1765년에 세워져 1996년까지 존속되었다.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은 갓 스무 살이 넘은 여성의 방종을 부추기는 것인가? 낙태가 방탕한 젊은 여성의 무분별한 성관계를 부추긴다는 이미지 또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통계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여성은 미혼자보다 기혼자의 비율이 언제나 높기 때문이다. 임신 중단을 결정할 권리는 신체의 주인에게 있다. 인간은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로 결정되고 새로운 입법과 의료보험 체계 마련 등의 과제를 앞둔 한국은 미국의 판결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함께 목소리를 내며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낙태는 결코 죄악시되어서는 안 된다.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고, 그럼에도 낙태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낙태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이며 인생에 대한 권리이다. 그러므로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의료 행위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우유니게(2018),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김영신(2022), 임신중절 줄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정부·국회 대체입법 손놔, 연합뉴스, 2022.06.30.

<https://www.yna.co.kr/view/AKR20220630070900530?input=1195m>

나경희(2022), 지금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인가 합법인가, 시사in, 2022.06.28.,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593>

앰네스티 인터네셔널(2022), 낙태에 관한 주요 사실, 2022.08.08.

<https://amnesty.or.kr/campaign/abortion-facts/?gclid=CjwKCAjw_ISWBhBkEiwAdqxb9s9goorBhx09yVm-tWT7zeOCk9S5_sDzzYlTrZ3vwNu61wIxaijirBoCtOcQAvD_BwE>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2022),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2019.04.11.

<https://www.law.go.kr/detcInfoP.do?detcSeq=150780>

BBC NEWS 코리아(2022), 로 대 웨이드: '낙태권 보장' 미국 대법원 판결 49년 만에 뒤집혀, 2022.06.25. <https://www.bbc.com/korean/news-61934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