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교장보다 신념 강한 만년 담임으로.
- 작성자 김형주 (2002 입학)
- 작성일 2021-10-14
- 조회수 4325
“선생님, 이번 역할책임제는 이건 빼고 이런 걸로 하기로 해요!”
“선생님, 내일의 아침을 여는 놀이는 제가 만들고 진행하죠?”
“선생님, 우리가 원하는 수업 기획안 검토해 주세요!”
“선생님, 저희 반 담임도 해 주세요!”
조금 긴 휴직 후 복직한 지 3년 반이 되어갑니다.
휴직 전에도, 복직 후에도, 코로나 전에도, 코로나 이후에도 저는 담임교사입니다.
남들 다 하기 싫어하는 담임을 떠맡아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 선택한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누구는 부장 교사하며 담임을 놓으라 하고, 누구는 장학사 시험을 보라하고, 누구는 승진을 위해 힘써 보라 합니다. 제안을 받을 때마다 흔들리지 않았다고 할 수 없고, 그 길들을 알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담임교사로 귀결됩니다.
그렇게 9년차 담임교사로 살다보니 교사마다의 성향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공 학문 연구의 차선책으로 교직을 선택한 교사들이 의외로 다수를 차지합니다. 월급을 타기 위해 존재하는 교사는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업무만을 선별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교과목 지식 무기를 장착한 교사는 상위권 아이들에게 ‘고지식’을 전파하며 전공의 학술적 발전에 무한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몸값을 정확히 계산하는 능력도, 전공 학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도 교직에 매우 필요하지요. 그리고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런 탁월한 능력 대신 교육학과 출신이라는 비장의 뚝심이 있습니다.
나만의 신념을 다지기 위하여 철학을 배우고, 학생을 이해하기 위하여 심리를 배우며,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공정한 일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행정을 익히고, 교직 사회 뿐 아니라 교육계의 흐름을 고인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사회학을 파헤치고, 보다 만족스러운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교수-학습 이론과 교육과정을 학습하는 곳. 나의 뿌리인 교육학과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물론, 캠퍼스에 서 있던 그 시절에는 그저 전공 ‘선택’이 아닌 ‘필수’여서, 학점을 따야 해서 들었다고 해야 솔직한 말이겠지요. 다행히 적성에 맞아 수업은 즐겁게 참여했지만 일부 과목은 시험 공부하기도 힘들었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끔은 ‘이 아까운 시간에 한 과목을 한 학기 또는 1년이나 듣는 것이 임용 요약본을 독학하고 암기하는 것보다 무엇이 나은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선배 교사들의 다양한 제안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낮은 곳에서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울림을 주고자 했던 나의 ‘신념’을 지킨 덕분이었습니다. 가정 사정과 교우 관계, 사회적 이해 관계 등 아이들마다 제각기 다른 사정으로 인한 괴로움을 마음으로 감싸 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특성과 학생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었고요. 다른 교사들이 눈치를 주어도 현행 교육 제도 안에서 학교에 내려와 있는 다양한 예산을 사용하여 담임반 학생들이 주최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교육학적 뿌리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시간에는 잠을 잘 수 없어요.”
“다음 끝내기 놀이는 뭐죠? 우리가 만드나요?”
같은 내용이라도‘고지식’한 수업 대신, 살아있는 교실에서 거꾸로 수업, 놀이 수업 등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수업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힘 또한 캠퍼스에서 키워놓은 것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교수-학습 방법 및 교육과정 설계를 배우며 나만의 수업을 만들어 보고 발표하며 연습했던 뇌 굴리기가 도움이 되었던 것이었죠.
나만의 독단적인 신념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신념으로, 생동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편안하게 앎을 채워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학생 문화를 이끌어가도록 받쳐주는 공간. 이런 교단의 교사로 거듭나게 하는 곳이 바로 교육학과가 아닐까요. 비단 교사 뿐 아니라 교육계의 다양한 곳에서 우리 과의 아주 많은 선후배님들이 진정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위하여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습니다. 재학생 여러분들도 앞으로 그러한 길을, 아니, 그보다 더 곧은 신념으로 창조적인 길을 걷게 되겠지요. 이번 교육학과의 40주년을 축하하며, 지나온 4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남다른 광채를 만들어낼 후배 교육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