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을 만나다 (39)근대 합작 십폭 병풍
- 작성자 학예사
- 작성일 2019-02-11
- 조회수 7227
이 소장품은 근대기 한국 화단을 이끌었던 화가 10인의 작품 10폭을 모아 하나의 병풍으로 만든 것으로 한국 근대 회화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소장품이다.
1948년 제작된 이 십폭 병풍은 기존의 병풍들이 산수도 병풍, 화조도 병풍처럼 같은 장르의 그림을 모아 구성하였던 것과 달리 산수도, 화조도, 영모도, 도석인물도, 어해도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모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병풍을 그린 화가는 오른쪽부터 심산 노수현, 소정 변관식, 정재 최우석, 제당 배렴,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묵로 이용우, 춘곡 고희동, 탄월 김경원, 심향 박승무이다.
조선시대에 비해 근대기에는 서화 교육기관과 서화단체가 결성되어 화가들의 합작품이 빈번하게 제작되었다. 이 병풍 그림의 화가들은 대부분 근대 한국화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1861-1919)과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1853-1920) 밑에서 수학하였다. 안중식은 경묵당(耕墨堂)이라 명명한 개인 화숙을 운영하였는데, 이곳은 서화교육의 산실이자 서화가들의 교유공간이 되어 젊은 근대 서화가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병풍의 여섯 번째 폭, 국화와 참새 그림을 그린 청전 이상범은 안중식의 경묵당에 기거하며 화업을 닦았고, 1923년 변관식 · 노수현 · 이용우 등과 함께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하여 한국적 전통회화의 새 방향을 모색하였다.
설립자 배상명 선생은 1938년부터 동아일보가 주최한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셨는데, 이상범 또한 몇 년간 이 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이력이 있어 두 인사의 교류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 병풍 네 번째 폭의 산수도를 그린 제당 배렴은 이상범의 제자이며 다른 폭들도 이상범을 중심으로 교류하였던 화가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아울러 이상범의 아들 지호 이건걸은 상명대학교 미술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병풍은 설립자 배상명 선생과 청전 이상범의 교유 관계 속에서 주문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